• 최종편집 2024-05-18(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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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나는 소피아 대학 소속일 때, 베오그라드 대학까지 출강을 했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의 얘기다. 일주일에 두 번을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밤 9시 50분에 출발하는 야간 열차를 타고 침대칸에 눈을 붙이면 새벽 5시 40분에서 아침 6시 10분 사이에 반드시 도착하게 되어 있다. 나는 주로 당시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대학은 일주일에 두 번,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대학은 일주일에 한 번, 그리스 테살로니키 대학과는 2주에 한 번, 이스탄불 대학과는 2주에 세 번의 시간 강사로 출강하는, 일종의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했었다.  

 

베오그라드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은 EU가 아니면서 발전이 전혀 없이 퇴보만 존재하는, 그야말로 죽은 도시였다. 베오그라드라는 뜻은 "하얀 도시"라는 뜻인데 그게 그냥 말뿐이고 솔직히 회색 시멘트, 콘크리트로 덕지덕치 쳐발라 놓은 그런 도시다. 간혹 베오그라드로 여행 오는 미국인들이 우스겟소리로 붙인 별명이 "Godamgrad"였다. 베트맨이 온다해도 발칸의 그 어떤 도시보다 이 도시는 구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뜻에서 생긴 별명이었다. 그 정도로 베오그라드는 죽은 도시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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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신시가지에 세워진 고층 아파트와 오피스텔들, 사진출처 : 필자의 직접 촬영

 

곰팡이 썩는 꿉꿉한 냄세, 밝지 않고 어딘가에 지친듯한 무표정의 시민들, 거리마다 넘쳐나는 쓰레기들, 여행자만 보면 돈 달라고 달려드는 까무잡잡한 집시들이 넘쳐 나는 도시로 세르비아 최고 명문 베오그라드 대학의 학생들은 이 대학에 오는 목표가 독일이나 프랑스로 탈출하여 좋은 직장에 취직해 돈을 벌려는 것이다. 내가 한창 시간 강사로 강의할 때 학생들 중 세르비아에 남겠다는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말 그대로 저마다 세르비아를 탈출하려고만 하지 고국에서 뭘 해보려는 젊은이들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은 심각한 인재 유출로 이어진다.

 

게다가 정치권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오는 부패의 사슬, EU와 미국의 제재와 더불어 세르비아를 말려 죽이기 위해 온갖 흉계를 꾸몄고 형제 국가인 러시아도 당시에는 도와줄 처지가 못 되었기에 루마니아, 불가리아와 같은 EU 국가들, 코소보나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같은 적대국에 둘러싸인 채, 외롭게 고립되어 있었다. 이 때 혜성 같이 등장한 영웅이 바로 알렉산데르 부치치(Александар Вучић)이다. 부치치는 2017년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이나 EU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 했지만 그들은 끊임 없이 세르비아 국내에서 협잡질을 일삼는 것을 파악하고는 본래 형제국가였던 러시아와 가까워졌다.


이어 중국과 더 밀착해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과 투자를 받기 시작했다. 세르비아와 중국은 양국에서 공산주의가 시작된 이후 꾸준히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었다. 양국 모두 공산 독재 체제였지만 시스템은 전혀 다른 원칙에 따라 움직였다.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1945~1992)에 속했던 세르비아는 진보적 공산주의 체제로 독재 정도가 그리 심하지 않았고, 일부 자본주의 시장 경제 요소를 도입하면서 개인사업과 소유를 어느 정도 허용했었다. 반면 중국은 농촌 인구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이를 기반으로 한 독자적 형태의 공산주의로 발전했다. 물론 현재 두 나라 정치 체제는 모두 사회, 경제, 정치적 삶의 모든 측면에서 중국은 공산당, 세르비아는 민족주의 우파 세력이 주도하고 있다. 유고슬라비아의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한 이후, 세르비아는 의회 민주주의를 향한 정치적인 변화와 더불어 자유 민주주의 시장 경제를 향한 경제적 변화를 위해 다당제를 확립했다. 그럼에도 중국과는 정치적 이해와 지지를 바탕으로 하는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리고 중국은 외교정책에서 항상 세르비아를 지지해왔다. 


1990년대 집단서방과 미국은 세르비아를 발칸반도 민족분쟁의 주범으로 여기고 세르비아를 공격했지만, 중국은 세르비아를 유럽 내 정치적 동맹국으로 여기고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sevic, 1941~2006) 정권을 지지했다. 그 뿐만 아니라 중국은 1999년 나토의 세르비아 폭격을 규탄했고, 현재 코소보가 유엔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세르비아를 지원하고 있으며 코소보를 독립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지난 20년 동안 더욱 견고해진 양국의 정치적인 관계는 경제 협력이라는 이름으로  관계가 격상하여 발전하고 있다. 

 

2013년 중국이 자국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와 서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와 유럽까지 대륙을 관통하는 일대일로 정책을 시작한 이후 세르비아는 중국과 대규모 인프라 프로젝트 협력으로 이어졌지만 주변 EU 국가들의 방해로 이 또한 지지부진했었다. 따라서 중국의 투자가 늦춰지는 몇 년 동안 세르비아는 경제 성장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시스템적인 문제에 직면했다. 2017년에 당선된 알렉산데르 부치치 대통령은 코로나 시기에도 EU 국가들이 백신을 나누어 주는 것을 거부하고 시리아 난민을 세르비아 밀어넣으려 하자 이에 반발하여 국경을 통제하고 중국으로 시노백, 시노팜 백신을 받아들이면서 정보기술과 고부가가치 제품, 인프라 프로젝트 등도 중국의 투자를 요청했다.


2020년 하반기부터 물밀듯이 중국의 투자 업체들이 세르비아 밀려 들이왔다. 이는 대 세르비아만을 좋게 하려는 자선사업의 성격이 아니다. 이는 중국이 협력과 관련하여 나름대로 우선순위를 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게 있어서 일대일로 추진의 최우선 목적은 지정학적 존재감을 강화하는 동시에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중국 기업들은 EU 기업들과 경쟁할 때 수많은 공식, 혹은 비공식적인 통제의 측면에 직면했기 때문에 EU 시장으로의 진입이 쉽지 않았다. 따라서 중국에게는 소규모 국가나 프로젝트가 EU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일 수 있고 세르비아가 그 거점이 될 수 있다. 

 

이에 지난 3년여 동안 40억 달러(약 4조 8,000억 원)가 넘는 중국의 대(對) 세르비아 대출이 이루어졌고 이러한 투자금들 중 약 40%가 세르비아의 인프라를 개선하는 작업으로 투자되었다. 이후 부치치 대통령과 중국이 맺은 협정에 의하면 향후 4년 안에 40억 달러 이상이 추가로 투자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양국의 협력은 2011년 중국 최초의 대규모 프로젝트인 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Belgrade)의 제문-보르카 대교(Zemun-Borca Bridge) 건설부터 시작되었고 그 주변에 각종 아파트들과 오피스텔들 건설되기 시작했다. 오늘 찍은 사진이 바로 그러한 아파트들과 오피스텔들이다. 


이후 세르비아는 중국의 경제 파트너들을 대규모 프로젝트에 추가로 참여시켜도 되는 믿을 만한 파트너로 간주했다. 현재 추진 중인 가장 중요한 인프라 프로젝트는 2018년에 시작된 베오그라드-부다페스트 철도와 2014년 시작된 세르비아 중서부를 가로지르는 E-763 고속도로 건설에 있는데 이게 이제 속도를 좀 내고 있다. 인프라 개발과 투자 유치를 통해 경제발전 속도를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길 바라는 세르비아에게 있어 중국의 투자는 아주 매력적이었고 실제로 세르비아의 모든 인프라들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EU 가입이 각종 이유들과 트집으로 인해 지연되고 있는 상황애서 EU 구조 기금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없게 된 세르비아의 입장으로 볼 때 중국으로부터의 투자 유치는 매우 합리적인 대안으로 인식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처럼 세르비아 정부는 정치 및 경제적인 이유로 인해 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지정학적 관점으로 볼 때 세르비아는 강대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동맹국으로 두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코소보의 지위와 관련하여 유엔에서 세르비아를 강력하게 지지해주는 큰 영향력 가진 국가다. 이는 중국과의 향후 프로젝트 협상에서 세르비아의 입지를 강화하는 것, 여기에 세르비아의 입장이 반영된 최종 합의가 도달되기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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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의 엄청난 변화, 열악한 인프라의 개선과 갑자기 밝아진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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