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7(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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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힌두교의 개혁가로 성자이자 인도의 영혼이라고도 한다. 그는 꼴까타 교외의 브라만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가난한 브라만으로 벵갈어를 제외하곤 모든 언어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정규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19세에 닥신네스와르 칼리 사원의 사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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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SRI RAMAKRISHNA 출처 : Thakur Ramakrishna & Maa Sarada, https://ramakrishna-sarada.blogspot.com/p/sri-sri-ramakrishna.html

 

그는 칼리 여신이 살아있다 믿었고 명상한지 1년만에 신이 살아있음을 체험했다 한다. 너무 열심히 순수하게 숭배했기 때문에 때때로 기도에 열중할 때 삼매(三昧)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후에 숲속에 들어가 12년 동안의 고행을 하여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명상과 고행을 중시하는 열렬한 힌두 비슈누를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힌두교 뿐 아니라 이슬람과 기독교도 섭렵하게 되었고 이해 또한 깊었으며 종교의 진리는 결국 각 종교의 구별을 초월한 곳에 귀결한다고 깨닫게 되었다.

 

그는 모든 종교는 하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인도에서 유일한 종교 다원주의자였고 소박하게 닥신네스와르 사원 한 켠에서 사제의 임무에 충실했다고 한다. 이 때 신을 체험한 라마크리슈나는 이렇게 말했다.


“이 방과 사원 등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시야로부터 사라져버렸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대신 거기 끝없이 지즈냐나(지혜)의 바다가 빛나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눈을 돌리든지 내 눈에 보이는 것은 나를 향하여 파도 쳐오는 저 즈냐나뿐이었다. 잠시 후, 그 바다의 파도들은 나에게 몰려와서 내 속으로 흡수되어버렸다. 너무나 강렬한 이 충격으로 하여 나는 의식을 잃고 주저앉아 버렸다.”


이후 칼리 사원에서 다음과 같은 영적인 체험을 했다. 


“내 몸과 마음이 경험한 영적인 세계의 4분의 1만 경험하더라도 보통사람 같으면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내 날들의 대부분이 영원한 어머니(칼리 여신)의 성스러운 비전에 대한 법열로 지나가버렸다. 그로부터 6년 동안 졸음조차도 내 눈을 찾아오지 않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도무지 눈을 감을 수 없었다. 시간에 대한 모든 감각이 나로부터 사라져갔다. 그리고 몸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영원한 어머니로부터 내 몸 쪽으로 마음이 거꾸로 돌아올 때마다 무시무시한 두려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는 자신의 쿤달리니 각성을 이렇게 보고하고 있다.


“발에서 머리로 진동하는 감각과 함께 무엇인가가 상승했다. 이 감각이 대뇌에 이르기 전에는 아직 의식의 불꽃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대뇌에 이르는 순간 나는 죽음을 경험했다. 시각과 청각은 정지해버렸고, 말하는 것조차 전혀 불가능했다. ‘나’와 ‘너’의 구별이 사라져버렸다. 이 신비로운 영력이 여기까지, 또는 여기까지(자신의 가슴과 목을 가리키며) 차올라 올 때의 느낌은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신비로운 영력이 이곳을 넘어가자(목을 가리키며) 누군가가 나의 입을 막아버렸다. 마음과 느낌은 더 이상 그곳에 닿을 수 없었다. 일은 거기서 끝나버렸다. (미간의 반대쪽 여섯 번째 차크라를 가리키며) 마음이 이 지점에 이르렀을 때 나는 신의 비전을 경험하면서 사마디에 들어갔다. 여기 신과 나 사이는 오직 엷은 막이 쳐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엷은 막을 통해서 그 신을 느낄 수 있었다.”


라마크리슈나는 말년에 후두암을 앓다가 죽었다. 이 때 한 학자가 그에게 왜 어머니께 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는지를 묻자 그가 대답했다. 


“내가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이 육체를 완전히 잊게 된다. 그래서 육체에 관해서 기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는 목 어디엔가에 상처가 난, 인간 육체에 쌓인 무한한 영혼이다.”


어느 날, 그는 칼리 사원의 강으로 난 목욕통 돌계단에 서 있었다. 그때 두 개의 조각배가 강에서 물결을 따라 떠내려가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한쪽 배에 탄 사공이 다른 쪽 배에 탄 사공의 등을 노로 후려쳤다. 그와 동시에 라마크리슈나는 등에 심한 통증을 느끼고 비명을 질렀다. 그의 비명을 듣고 그의 조카인 흐리다이가 달려가 보니 그의 등에는 심한 매 자국이 나 있었다고 한다.


영적 체험을 하게 되면 인성이 변하게 되는데, 그 변화의 요점은 ‘나’와 ‘너’의 구별이 희미해지거나 없어지는 것이다. 이 때의 ‘너’는 자신을 제외한 세계 전체를 의미한다. 라마크리슈나는 그 무분별로 인하여 뱃사공이 노로 맞는 것을 보고 고통을 느끼는 차원에까지 이르렀다


인도 5파 철학의 권위자인 나라얀 샤스트리와 베단타와 니야야 철학의 권위자인 파드말로챤은 라마크리슈나를 신의 화신으로 인정했다. 동시대의 많은 철학자들이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많은 경전을 읽고 많은 성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라마크리슈나는 경전에 기록된 진리의 육화임에 틀림없다.”


라마크리슈나는 "힌두는 물을 빠니, 무슬림은 잘, 영국인들은 워터라고 한다. 이 3개의 말은 다르지만 물이라는 존재는 원래 하나다. 같은 이치로 어떤이는 하느님, 어떤이는 알라, 어떤 이는 라마, 칼리, 브라마로 부를 뿐이다."


라마크리슈나는 힌두와 이슬람을 화해시키려 노력했고 이러한 노력들로 인해 그는 성자의 반열에 올라서 오늘날까지 존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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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까타를 대표하는 또 다른 인도의 성자 라마크리슈나(Ramakrishna, 1836~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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