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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검색결과

  • 인도네시아, 기니에 패해 파리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인도네시아 23세 이하 축구 대표팀이 아프리카의 기니에 0-1로 패하며 2024 파리 올림픽 남자축구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이 경기는 9일(현지시간) 프랑스 클레르퐁텐에서 열린 대륙간 플레이오프에서 치러졌다. 인도네시아는 이번 달 초 열린 AFC U-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4위를 기록하며 아시아에 배정된 3장의 올림픽 직행 티켓 중 하나를 확보하지 못했다. 대회 8강에서 황선홍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을 승부차기로 꺾으며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이후 우즈베키스탄과 이라크에 연이어 패하며 결국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기니와의 경기에서 인도네시아는 전반 29분 페널티킥으로 인해 기니에 선제골을 허용했으며, 후반에도 또 다른 페널티킥을 허용하는 위기를 맞았다. 신태용 감독은 판정에 격하게 항의하다가 연이어 경고를 받고 퇴장당했다. 퇴장 후에도 신 감독은 벤치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항의를 이어갔고, 이에 인도네시아 관중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도 했다. 페널티킥 실축으로 인해 추가 골은 나오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는 결국 패배를 막지 못하고 경기를 마쳤다. 이로써 1956년 멜버른 대회 이후 올림픽 본선에 한 번도 출전하지 못한 기록을 이어가게 되었다. 한편, 기니는 U-23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4위에 오른 후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인도네시아를 꺾으며 1968년 멕시코시티 대회 이후 사상 두 번째로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기니의 마지막 파리행 티켓 확보로 이번 올림픽 남자축구에 참가할 16개국이 모두 확정되었다. 이번 올림픽에는 개최국 프랑스를 비롯해 미국, 도미니카공화국, 스페인,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모로코, 이집트, 말리, 뉴질랜드,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일본, 우즈베키스탄, 이라크, 기니 등이 출전한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9대회 연속으로 올림픽에 출전했던 한국은 36년 만에 올림픽 본선 무대를 관전만 하게 됐다.
    • 스포츠
    • 스포츠종합
    2024-05-10

과학 검색결과

  • 21년 만의 강력한 태양 폭풍, 한국에서도 오로라 포착
    최근 21년 만에 발생한 가장 강력한 태양 폭풍으로 인해 한국의 밤하늘에서도 오로라가 포착됐다. 14일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에 따르면, 지난 12일 새벽 강원도 화천군에서 아마추어 천문가들이 잇따라 오로라 촬영에 성공했다. 오로라는 태양 표면에서 폭발이 발생하면서 쏟아지는 고에너지 입자들이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극지방으로 내려오면서 지구 대기와 반응해 내는 빛이다. 초록색과 붉은색 오로라는 산소 원자가 내뿜는 빛이며, 간혹 보라색 오로라는 질소 분자와의 반응으로 생긴다. 보통 오로라는 지구 자기장의 남북극을 중심으로 고리 모양으로 나타난다. 태양 활동이 활발해져 지자기 폭풍이 강해지면, 오로라의 고리도 남북 방향으로 넓어진다. 이번 태양 폭풍이 매우 강력해, 지자기 북극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한국에서도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었다. 천문연 관계자는 “강력한 태양 폭발이 지구를 덮쳤던 2003년 10월 30일, 보현산 천문대에서도 붉은색 오로라가 포착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번 태양 폭풍의 진원지는 지구 16배 크기의 흑점 3664로, 현재 태양 서쪽 끝으로 이동하면서 활동성이 다소 완화된 상태다. 그러나 흑점이 태양 뒷면으로 완전히 이동하기 전까지는 간헐적으로 폭발 경보가 발령될 가능성이 있다고 천문연은 밝혔다. 흑점이 태양 뒷면으로 이동하는 시기는 현재 15일로 예상된다. 천문연은 또 지난 주말에 발생한 코로나 물질 방출(CME)이 14일 지구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추가적인 지자기 교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태양 폭풍은 G5 등급으로, 이는 2003년 10월 이후 처음 발생한 가장 강력한 등급이다. 강력한 태양 폭풍은 영국, 폴란드, 시베리아, 몽골 등 고위도 지역뿐만 아니라 미국 플로리다, 하와이, 멕시코 등 저위도 지역의 밤하늘에도 오로라를 수놓았다. 태양 폭풍의 영향으로 미국에서는 내비게이션 기술을 사용하는 트랙터가 작동을 멈추는 등 작은 사고들이 발생했으나, 우려했던 대규모 통신 및 전력망 장애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강력한 태양 폭풍으로 인해 한국에서도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었던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천문연은 앞으로도 태양 활동을 면밀히 관찰하고, 태양 폭풍으로 인한 지구 환경의 변화를 예의주시할 계획이다. 이는 향후 발생할 수 있는 태양 폭풍에 대비하고, 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이어질 전망이다. 이번 태양 폭풍의 발생과 오로라 관측은 천문학적 사건으로,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오로라를 촬영한 아마추어 천문가들의 사진이 화제가 되며,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천문연은 “이번 오로라 관측은 태양 활동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며 “앞으로도 태양 활동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련 연구를 통해 지구 환경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천문연은 태양 폭풍으로 인한 잠재적 위험성을 경고하며, 관련 기관과 협력해 대비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태양 활동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기 때문에, 이를 면밀히 관찰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태양 폭풍과 오로라 관측은 천문학적 연구와 대중의 관심을 동시에 끌어모으며, 태양 활동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자연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연구하는 노력이 지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 과학
    • 정보통신
    2024-05-14

칼럼 검색결과

  • 내일 20일에 벌어질 미국 하원에서의 표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존폐를 가른다.
    미국이나 우크라이나를 추가로 지원하느냐 마느냐의 여부는 내일 있을 미국 하원의 표결 결과에 따라 달려 있다. 이는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관심사 중 하나다. 서로 다른 성격, 다른 유형의 전쟁이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이란의 사이가 심상치 않음에 따라 여기에 대처하는 미국의 핵심 외교 정책, 이를 둘러싼 국제 전략을 파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더불어 미국은 남부 국경 지대인 텍사스를 중심으로 한 멕시코 난민에 대해 안보를 강화할 지에 대한 여부도 여기에 달려 있다.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 두 진영으로 갈라져 소위 '이민 전쟁'까지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실상 3개의 전선이 서로 작용, 반작용을 하면서 그로 인해 이해 충돌로 생기는 예산안 처리들이 6개월 가까이 지연된 것이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보인다. 현재까지의 이러한 혼전은 내일 20일에 있을 미국 하원 본회에서 표결로 종결될 전망이다. 우크라이나 지원 안 외에도 이스라엘, 대만 지원 관련 예산 안과 대러 제재 강화 법안 등 모두 4개 법안이 내일 표결에 부쳐진다. 표결이 모두 가결되거나 일부 부결되는 법안 있을 것이다. 가장 유력한 부분은 미국의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 안 관련 부분이다. 이 추가 지원 안이 통과될 경우, 젤렌스키 대통령 등 우크라이나 전체에 안겨주는 심리적 효과는 실제로 지원해주는 효과보다 훨씬 크게 나타날 것이다. 미국이 아직 자신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가질 것이고 나아가 러시아에 승리할 수 있다눈 기대감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예상은 근소한 차이로 대 우크라이나 지원이 확정될 것으로 보여진다. 불리한 전쟁을 2년 동안 끌고 온 서방과 미국이다. 여기서 만약 부결되어 우크라이나를 지원하지 않으면 그동안 그럴꺼면 우크라이나를 왜 지원했는지, 그동안의 지원에서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각 곳에 성토의 십자포화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지원 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그 책임에 대해 바이든 현 대통령에게 직결된다. 그렇게 되면 올 11월 대선 때 바이든과 민주당의 패배는 거의 확정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리고 대외적인 미국의 자존심도 여기에 걸려 있다.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을 철수하고 시리아와 중동, 아프리카 각 지역의 미군 부대들의 철수의 압박과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은 그렇다 쳐도 러시아와의 대결은 다르다.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라이벌로 부상한 러시아와의 대리전에서 철수하게 되거나 지원을 하지 않게 된다면 이미지에서 큰 타격을 입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 같은 사실을 바이든 뿐 아니라 트럼프도 잘 알고 있다. 원래 전쟁이라는 것는 시작하는 것보다 끝이 더 어려운 법이다. 어떻게 하면 미국의 이익에 덜 손해를 보게 하면서 차악의 방식으로 마무리 짓게 하는 것은 수 많은 생각과 전략을 짜야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형식들로 인해 공화당과 트럼프 또한 일견 동의할 것으로 생각된다. 잘 끝내고 종결짓기 위해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지원 안에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내 예상은 이 법안 결국 통과될 것이다. 그 다음은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관련 문제다. 지난 13일 미국 등 서방 측의 방공 지원을 받아 이란의 대대적인 미사일과 드론 공습에 그나마 드론 대부분을 요격하고 탄도미사일에 피해를 입었지만 어느 정도 방어에 성공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심리적으로 서방 측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좌절감이 팽배했을 것이다. 대 우크라이나 지원 안 예산 통과는 이러한 좌절감을 딛고 다시 러시아에 대응할 수 있는 자신감을 찾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 여부를 놓고 미국 백악관과 의견 대립이 심각했던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은 지난 17일 우크라이나에 607억 5천만 달러를 지원하는 안보 예산안 등 4개의 법안을 20일 표결에 부치겠다고 발표했다. 백악관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대만을 지원하는 예산을 모두 하나의 법안에 묶어 의회 통과를 시도했지만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이는 남부 국경지대의 안보 강화 조치가 부족하고 난민들이 계속 몰려 들어 치안이 더욱 불안해졌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존슨 의장이 남부 국경 지대에 대한 요구 조건을 철회하고, 백악관의 원래 법안과 다를 게 없는 법안을 단순하게 4개로 분리한 뒤 따로 표결에 부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결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유를 대면서 후세의 역사적 평가가 미국의 행위를 평가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강경파 동료 의원들의 해임 위협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안이 통과될 것이라 보는 것이다. 마이크 존슨은 미국 청소년들이 총알받이가 되도록 참전하는 것보다는 우크라이나에 총알을 보내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이에 스트라나.ua는 존슨 의장의 아들이 올 가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할 예정이라고 기술했으며 러시아가 나토를 공격할 경우, 그의 아들도 참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발표한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의 주요 내용들을 보면 총 지원액 607억 5천만 달러 중 230억 달러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따른 미국의 재고 무기 충원에 예산이 책정되며 113억 달러는 지역 내 지속적인 미국의 군사작전에 사용된다. 즉, 이 돈은 중동 지역이나 아프리카 지역에 있는 미군 군사작전 비용으로 돈을 낭비한다는 말이다. 또 138억 달러는 미 육군과 동맹국을 위한 최신 무기 구입에 쓰인다. 다만, 우크라이나 경제 지원용 78억 달러는 차관 형태로 지원된다. 이 말은 그 전까지 공짜로 퍼주다시피 했던 지원을 차관, 즉 빌려준다는 명목으로 지원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금액이다. 그런데 이것 저것 벌려 놓은게 많은 우크라이나가 78억 달러 조차도 갚을 능력이 되는지 모르겠다. 우선 미 국방부는 이 예산안이 통과될 경우, 국방부 비축 무기를 우선 우크라이나로 이전하고, 통과된 예산으로 부족분을 보충할 것으로 에상된다. 그런데 상원을 통과한 기존의 백악관 안과 차별화된 부분은 우크라이나 경제 지원 예산이 무상 지원이 아니라 차관 형태로 바뀐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우크라이나가 결국 상환을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은 법안 채택 후 60일 내에 우크라이나 정부와 차관 상환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다만 미국 대통령 선거인 11월 5일에 끝난 뒤인 11월 15일 이후 대 우크라이나 채무를 최대 50% 탕감할 수 있는 권리를 대통령에게 부여했다. 또 2026년 1월 1일 이후에는 모든 채무를 탕감할 수 있다. 탕감 권한을 두 대통령에게 공평하게 나눠줬다고 할 수 있는데 이를 탕감할 경우, 국민들의 엄청난 반발이 예상된다. 그리고 백악관 안에 추가된 것은 에이테큼스(ATACMS) 장거리 미사일의 제공 부분이다. 우크라이나는 줄곧 ATACMS 장거리 미사일을 요구해왔는데 제공 여부 결정은 대통령에게 위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금까지 사정거리 300km에 이르는 장거리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우크라이나 전선을 더욱 확대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따라서 ATACMS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실제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고 본다. 존슨 의장은 '지금 우크라이나를 돕지 않으면 러시아가 나토를 공격할 것'이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주장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표결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트럼프 전대통령조차 우크라이나 지원을 중요하다고 말을 바꿨다. 그래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도 우크라이나 지원이라는 대세를 거스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우크라이나가 멸망하지 않은 한, 대통령이 트럼프로 바뀌었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 칼럼
    • Nova Topos
    2024-04-21
  • 멕시코와 라틴 아메리카의 20세기 역사를 바꿔 놓은 거대한 사건, 멕시코 혁명(Revolución mexicana)
    20세기 초까지 절대적으로 멕시코를 지배했던 포르피리오 디아즈(Porfirio Díaz, 1830~1915)는 1860년대 프랑스 제2 제국인 나폴레옹 3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영웅 중 한 명이었으며 당시 프랑스는 멕시코 제2 제국이라는 괴뢰 국가를 건국하고 막시밀리아노 1세를 황제로 앉혔었다. 포르피리오 디아즈는 멕시코 제국을 제압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재임 기간인 1876년부터 1911년까지를 포르피리아토(Porfiriato)의 절대 권력 독재 통치 시기라고 한다. 물론 중간에 후안 네포무세노 멘데스(Juan Nepomuceno Méndez, 1820~1894)가 두 달 동안 대통령 직위에 있었으나 그다지 존재감은 없었고 마누엘 곤살레스 플로레스(Manuel González Flores, 1833~1893) 가 1880~1884 동안 대통령으로 재임했으나 마누엘은 디아즈의 정책을 충실히 이어받아 실행했다. 디아즈 정권은 산업을 진흥시키고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였으며 도로, 댐, 철도와 같은 인프라도 구축되었다. 외관상으로 볼 때 이와 같은 외자 도입으로 인해 철도 부설이 진행되는 등 산업의 진흥과 경제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반면 빈부격차는 극도로 확대되었다. 디아즈 정권은 근대적인 국가의 체제를 정비하기 위해 토지의 등기 제도를 추진했다. 하지만 멕시코의 원주민들은 원래부터 토지 소유라는 개념이 없었고 거의 모든 농민은 소유권이 확실하지 않은 마을 공동지에서 경작했다. 디아즈는 '토지제도의 근대화(Modernización del sistema territorial)'라는 명목으로 이와 같은 소유권이 애매한 토지를 정부가 접수한 이후 외국 자본과 대농장주에게 매각하는 정책을 추진하여 상당수의 멕시코 농민의 대다수가 토지를 잃고 '페옹(Feong)'이라 불린 농업 노동자들로 전락했다. 이처럼 돈을 버는 자들은 대장원을 소유한 '아센다도스'(hacendados)와 같은 부유층 뿐이었으며 도시 노동자들이나 농민들은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디아즈는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루랄레스'(Rurales)라고 하는 경찰 병력을 동원하거나 잇달아 선거로 인한 투표들을 조작하는 등 멕시코 역사상 최악의 독재 정치를 펼쳐나갔다. 토지를 되찾기 위한 원주민들은 끊임없이 디아즈에 저항했으나 정부군 및 대농장주가 고용한 사병들에 의해 강제로 진압되었다. 디아스의 폭정에 반대하던 시프리아노 리카르도 플로레스 마곤(Cipriano Ricardo Flores Magón), 엔리케 플로레스 마곤(Enrique Flores Magón), 가스파르 헤수스 멜초르 플로레스 마곤(Gaspar Jesús Melchor Flores Magón) 등 이른바 '마곤 형제'는 아나코-코뮤니즘(Anarco-Communism)을 내세워 멕시코 농민들을 선동했고 이 형제들의 사상을 마곤주의(Magonismo)라 불렀다. 1900년 반(反) 디아즈 신문인 <갱생(Regeneración)>을 출간했지만 디아즈 정권에 대한 탄압이 심해져 1905년 미국으로 망명해야 했다. 또한 마곤 형제를 비롯한 지식인들은 디아즈가 권력을 쥐고 있던 자유당(Partido Liberal)에서 갈라져 1905년 멕시코 자유당(Partido Liberal de México)을 조직하게 된다. 이에 노동자와 농민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멕시코 전국에서 노동조합이 조직되기도 하고 여러 곳에서 파업이 발생했다. 1906년 미국 자본의 소유였던 멕시코 북부 카나네아(Cananea) 구리 광산에서 미국인과 멕시코인 사이의 임금 차별을 이유로 파업이 발발했다. 디아즈의 후원을 받은 광산 회사 측의 강경 진압으로 인해 45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항구도시 베라크루스에서는 군인들이 파업 중이던 노동자에게 발포해 죽이고 시체를 바다에 던져 상어밥으로 만들기까지 했다. 그리고 고령에도 권력 욕심을 놓지 못한 디아즈는 1910년 대선 출마를 선언했고, 당시 윌리엄 태프트(William Taft, 1857~1930)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지원을 약속받기까지 했다. 이 때 디아즈와 대선에서 대항마로 북부 지주 출신의 신흥 대농장주이자 청년 지식인이었던 프란시스코 마데로(Francisco Madero, 1873~1913)가 등장했다. 마데로의 지지세는 34년째 지속된 디아즈 독재 정권에 질린 멕시코 여론에 힘입어 급속도로 성장했다. 이에 디아즈 정권은 마데로를 체포하여 투표일을 산 루이스 포토시(San Luis Potosí) 감옥에서 맞이하게 했다. 야당 대표를 탄압한 디아즈는 자신이 압도적인 득표로 재선되었다고 선언했지만 이 대선은 누가 봐도 부정선거였다. 선거가 끝나자 석방된 마데로는 미국 텍사스로 망명하여 10월 25일에 그의 지지자들과 함께 <산 루이스 포토시 계획(Plan de San Luis)>을 발표하여 봉기를 호소했고 이에 따라 마데로의 지지자들이 멕시코 북부 도시인 치와와에서 봉기를 일으켰다. <산 루이스 포토시 계획(Plan de San Luis)>은 무력에 의한 디아즈 정권의 타도를 천명한 무력 투쟁 선언이었다. 미국에 있던 마데로의 주위에는 같은 목표를 가진 멕시코인 동지들이 집결했는데 그 사이 멕시코 국내에서는 마데로에게 동조하는 운동이 차례로 발생하게 된다. 11월 18일에 마데로의 동지였던 아길레스 세르당(Aguiles Cerdán)이 푸에블라 시에 있던 저택에서 무장 봉기에 대한 준비가 발각되면서 경찰에게 구타당한 후 총에 맞아 죽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계기로 멕시코 시티의 남쪽 모렐로스 주에서는 에밀리아노 사파타(Emiliano Zapata, 1879~1918)가 무장 봉기를 일으켰고 북부 일대에서는 프란시스코 "판초" 비야(Francisco Pancho Villa, 1878~1923), 파스쿠알 오로스코 바스케스(Pascual Orozco Vazquez, 1882~1915), 베누스티아노 카란자(Venustiano Carranza, 1859~1920), 알바로 오브레곤(Álvaro Obregón, 1880~1928) 등이 차례로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당시 디아즈 대통령의 나이는 80세를 넘겼기 때문에 정치적인 수완은 이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디아즈 대통령의 측근이 그의 정치를 보좌하는 형국이었다. 멕시코 각지의 수많은 세력들은 '디아즈 타도'라는 목표를 가지고 마데로를 중심으로 규합되었다. 그러나 이는 가장 가난한 계층부터 부유 계층까지 그 성격이 다양하였기 때문에 이는 디아즈를 축출한 후에도 또 다른 내전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프란시스코 마데로는 미국의 국제적인 파워 또한 무시하지 않았다. 그는 동생 구스타보 아돌포 마데로 곤살레스(Gustavo Adolfo Madero González, 1875~1913)를 미국에 보내 상, 하원에서 로비 활동을 펼치게 했다. 이를 통해 '트러스트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의 사업가 찰스 란네트 플린트(Charles Ranlett Flint, 1850~1934) 등의 재벌들의 지원을 얻을 수 있었으며 미국 정부가 멕시코의 혁명가들에게 불리하지 못하게 법을 적용하도록 하는 등의 영향을 끼치게 된다. 북부 지역에서 메히칼리, 시우다드 후아레스, 치와와 등이 혁명군에게 함락되었으며 남부에서는 사파타가 쿠아우틀라를 점령했다. 이처럼 혁명군의 세력이 넓어질수록 그 규모도 커졌다. 하지만 혁명군들은 디아즈 축출이라는 목적은 같았지만 하나의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같은 목표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마곤주의자들은 메히칼리와 티후아나를 포함하는 코뮌 자치정부를 세우면서 가장 먼저 반 디아즈 정권을 창립했다. 그러나 멕시코에서 가장 하층민이 세운 이 자치정부는 디아즈가 물러난 이후 마데로에 의해 진압된다. 혁명을 진압할 수 없었던 디아즈는 자신이 권좌에서 축출로 인해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지 않으려고 결국 마데로와 협상을 벌였다. 그동안 디아즈의 평화(Pax Porfiriato)라는 영광에 안주해 왔던 디아즈 정권에게 전국에서 일제히 봉기하는 혁명군을 진압할 수 있는 군사적인 준비가 전혀 갖추어지지 않았다. 정부군인 연방군은 스페인과 프랑스를 이긴 무적의 군대라는 명성의 이면에 군대 조직에서 장교들의 무능과 부패, 군 지휘부의 노쇠화 등 여러 병폐들을 안고 있었으며 이러한 허점들은 혁명군과의 전투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주요 전투에서 정부군이 잇달아 혁명군에게 패배하고 혁명군이 농촌 지방의 대부분과 시우다드 후아레스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을 장악하게 되자 지방 군벌, 소농민, 상인, 관료층, 전문 지식인, 자본가 계층이 본격적으로 혁명 운동에 호응하기 시작했고 사태를 관망하던 미국이 점차 혁명군에 우호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그리하여 1911년 5월 21일 체결된 시우다드 후아레스 조약(Treaty of Ciudad Juárez)으로 인해 5월 25일 디아즈는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고 파리로 망명하게 된다. 이처럼 디아즈가 퇴진한 이후 새로운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때까지 프란시스코 레온 데 라 바라(Francisco León de la Barra, 1863~1939)가 5개월 정도 대통령직을 수행했으며 선거에서 마데로가 압도적인 표차를 당선되면서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 디아즈의 축출은 멕시코의 20세기 역사를 바꿔 놓은 거대한 사건으로 중남미 최초의 대규모 혁명으로 남미 국가들의 지식인들이 독재정권의 저항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티브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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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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