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일: 2026-05-21 03:58 (목) 05.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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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금융 사다리...은행권 고신용 쏠림과 중신용자 배제 문제

끊어진 금융 사다리...은행권 고신용 쏠림과 중신용자 배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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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경식 작가)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A씨(38)는 최근 생활자금 마련을 위해 시중은행 신용대출을 신청했다.

연체 이력이 없고 7년째 안정적으로 급여를 받아왔지만, 결과는 “신용평점과 내부 기준상 한도가 제한적”이라는 통보였다.

결국 A씨는 금리가 더 높은 2금융권으로 눈을 돌려야 했다. 한국 금융시장에서 중신용층이 은행권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주요 은행의 일반 신용대출 평균 신용점수(KCB 기준)는 대부분 900점대 초중반에 형성돼 있으며 인터넷전문은행조차 비슷한 수준을 보인다.

정부는 금융 포용 확대를 강하게 주문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국무회의에서 금융기관의 중·저신용자 포용 실적을 평가·관리하겠다고 밝혔으며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현재 금융시장을 “중간 계단이 통째로 빠진 사다리”로 표현했다.

본 기사는 은행권의 고신용자 중심 영업 구조, 인터넷은행의 현실, 중금리 시장 축소 현황, 그리고 정부의 포용금융 정책이 실제로 금융 사다리를 복원할 수 있을까.

고신용 쏠림 현상과 그 원인

연체 한번 없는데…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하는 중신용자

한국 금융권에서 신용대출은 과거 ‘성실한 금융 생활의 보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연체 이력이 없고 꾸준한 소득이 있음에도 은행권 대출 한도가 제한되거나 거절당하는 중신용자들이 늘고 있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의 일반 신용대출 평균 신용점수(KCB 기준)는 대부분 900점대 초중반을 기록하고 있다.

SC제일은행 965점, 부산은행 954점, 토스뱅크 930점 등으로, 고신용자 중심 구조가 뚜렷하다. 금융권에서는 금리 상승기 이후 리스크 관리가 강화되면서 내부 심사 기준이 더 엄격해졌다는 설명이다.

안정적인 대기업·공공기관 재직자, 장기 금융거래 이력, 낮은 부채비율 등을 종합적으로 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중소기업 근로자, 자영업자, 플랫폼노동자, 사회초년생 등 중신용층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지고 있다.

은행에서는 경기 둔화와 연체율 상승 우려 속에서 부실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합리적 선택’이지만, 결과적으로 중신용층의 1금융권 접근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경식 작가)
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경식 작가)

인터넷은행의 딜레마… 중금리 혁신은 어디로

인터넷전문은행은 기존 은행이 외면하던 중·저신용자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출범했다. 비금융 데이터를 활용한 새로운 신용평가 모델로 금융 포용을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 성적표는 혼재되어 있다. 토스뱅크와 카카오뱅크의 평균 신용점수도 시중은행과 큰 차이가 없으며 고신용자 비중이 여전히 높다.

다만 정부가 요구하는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30%)은 대부분 초과 달성하고 있다. 카카오뱅크의 경우 올해 1분기 신규 대출 중 중·저신용자 비중이 45%를 넘었다.

인터넷은행 측은 “정책 목표는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목표 비중은 맞추되 전체 수익·리스크 구조는 여전히 고신용자 중심”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고신용자는 심사 비용이 적고 연체 위험이 낮아 수익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인터넷은행도 출범 초기의 ‘금융 혁신’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건전성을 지켜야 하는 구조적 딜레마에 놓여 있다.

중신용층 붕괴와 정부의 대응

정부의 강한 경고… 중간 계단이 통째로 빠진 사다리

정부는 최근 금융권의 고신용 쏠림 현상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강도 높은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금융기관의 중·저신용자 포용 실적을 평가해 불이익을 줄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으며 “포용금융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강조했다.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은 더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현재 신용대출 시장을 “중간 계단이 통째로 빠진 사다리”로 규정했다.

고신용자는 낮은 금리로 쉽게 자금을 조달하는 반면 중신용층은 은행권에서 밀려나 고금리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부의 문제의식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를 넘어선다. 금융 접근성이 특정 계층에게만 집중된다면 사회 전체의 경제 이동성과 소비 활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다.

특히 중신용층이 금융 시스템에서 배제되면 창업, 주거, 교육 등 장기적인 경제 활동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줄어드는 중금리 시장… 사라지는 금융 완충지대

더 큰 문제는 중신용자들이 은행권을 넘지 못했을 때 이동할 수 있는 ‘중금리 시장’마저 빠르게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저축은행의 민간 중금리 대출 규모는 최근 1년 새 1조 원 이상 감소했다.

대출 건수와 평균 금액도 함께 줄면서 중신용층의 실질적인 선택지가 좁아지고 있다. 과거 중금리 시장은 고신용자와 저신용자 사이를 연결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했으나 지금은 그 기능이 크게 약화한 상황이다.

은행권과 인터넷은행은 연체율 상승을 주요 이유로 들고 있다. 실제 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출 연체율이 최근 2%대까지 올라가면서 리스크 관리 강화가 불가피해졌다는 설명이다.

경기 둔화와 자영업자 부실 우려 속에서 금융회사들이 위험 차주를 회피하는 것은 경영상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중신용층은 ‘고신용은 은행, 저신용은 정책금융, 중신용은 갈 곳 없음’이라는 구조적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금융 전문가들은 “위험을 철저히 선별하는 금융 산업의 속성과 사회적 포용이라는 공공적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지적한다.

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경식 작가)
이미지 삽화이다.(일러스트=박경식 작가)

새로운 신용평가와 금융 사다리 복원 가능성

AI와 생활 데이터… 바뀌는 신용평가 기준

기존 신용평가 시스템이 변화한 노동시장과 경제 구조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커지면서 금융당국과 인터넷은행들은 대안신용평가 모델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기존 평가가 안정적 직장, 장기 카드 사용 이력, 낮은 부채비율 중심이었다면 새로운 모델은 통신 요금 납부 실적, 온라인 소비 패턴, 플랫폼 활동 데이터, 마이데이터 등 비금융·생활 데이터를 적극 활용한다.

카카오뱅크는 소비·통신 데이터를 토스뱅크는 플랫폼 이용 정보와 개인사업자 데이터를 케이뱅크는 KT 통신 데이터 등을 신용평가에 반영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이러한 시도로 카카오뱅크는 연간 수천억 원 규모의 추가 중·저신용 대출 공급 효과를 보고 있으며 토스뱅크는 약 10만 명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했다.

이는 긍정적인 변화지만, 동시에 개인정보 보호와 ‘감시 금융’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생활의 패턴까지 금융 판단의 기준이된다면 프라이버시 침해 논란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성실하지만 평범한 사람들… 가장 큰 금융 사각지대

이번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대출 비율이 아니라 한국 금융 시스템이 점점 ‘완벽한 차주’만 선호하는 구조로 고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은행들이 가장 선호하는 고객은 대기업·공공기관 재직자, 장기 금융 이력 보유자, 초고 신용자다.

반면 중소기업 직장인, 자영업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사회초년생 등 ‘성실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다수의 국민은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다.

한국 경제 구조가 이미 비정형 노동과 자영업 중심으로 바뀌었음에도 금융 기준은 여전히 과거 정규직 중심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 때문에 중신용층이 금융 사다리에서 미끄러지면서 소비 위축, 창업 감소, 경제 이동성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금융 전문가들은 “리스크 관리와 사회적 포용 사이의 균형을 찾지 못하면 금융 시스템 자체가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라고 경고한다.

포용 없는 금융은 사회의 균열을 키운다

한국 금융권의 고신용 쏠림 현상은 단순한 대출 심사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누구에게 금융 기회를 주고 누구를 시스템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구조적 신호다.

은행들은 경기 불확실성과 연체율 상승 속에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고신용자를 중심으로 대출을 취급하는 것은 금융회사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반면 정부는 중신용층의 금융 배제가 사회 전체의 경제 이동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보인다.

현재 금융 시스템은 ‘초고 신용자는 낮은 금리 혜택, 저신용자는 정책금융이나 고금리 시장, 중신용자는 갈 곳 없음’이라는 왜곡된 구조를 보인다.

특히 한국 경제가 플랫폼노동, 프리랜서, 자영업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에도 금융 기준은 여전히 과거 정규직 중심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인터넷은행의 대안신용평가 모델(AI·생활 데이터 활용)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직 전체 구조를 바꾸기에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개인정보 보호 문제와 함께 실질적인 부실 관리 능력도 함께 검증받아야 할 과제다. 결국 한국 금융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명확하다.

위험을 철저히 피하는 산업으로만 남을 것인가 아니면 사회적 이동성과 경제 활력을 뒷받침하는 공공성을 함께 갖춘 시스템으로 거듭날 것인가.

금융 사다리의 중간 계단이 다시 연결되지 않는다면 ‘성실하지만 평범한’ 다수의 국민은 점점 더 높은 벽 앞에 서게 될 것이다. 정부와 금융권, 그리고 사회 전체가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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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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